2011. 11. 7.

도스 시절 게임 『헐크(Bad Street Brawler)』



도스 시절 게임 『헐크(Bad Street Brawler)』


  한때는 나름 차세대 컴퓨터였던  대우 코로나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 5.25인치 디스켓을 넣고 일일이 - 이게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면서 - 명령어를 치던 그 때에도 게임은 있었다. 대충 지금 생각는대로 꼽자면, 너구리(BongBong), 킹콩(Rampage), 헐크(Bad Street Brawler), 신문배달원(Paperboy) 등이었는데, 한글명과 영어 원명이 서로 다른 이유는 전적으로 내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게임을 복사해주던 가게에서 디스켓에 써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명을 안 것은 인터넷에서 거의 우연히 - 저 한글명을 검색어로 해서 찾는 건 힘겹다 - 고전게임 정보를 찾아낸 근래의 일이다.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는 무슨 회사인가? 모른다. 내가 알 리가 있는가. 게임 제목도 몰랐는데.



  이 총천연색으로 무장된 화면을 보라. 내가 쓰던 모니터는 검은색, 흰색, 자주색 정도로만 보여줄 수 있었기에, 이 게임이 저러한 녹색이나 보라색 등을 표현하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1987년산이란다. 지금 막연히 생각했던 것만큼 오래된 게임은 아니었다. 빔 소프트웨어(Beam Software)가 게임 개발사이고 마인드스케이프가 배급사인 모양이다. 근데 화면의 저 할머니는 핸드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그...


  새삼 보니 나름 정교한 옵션들을 갖추었다. 키보드와 조이스틱을 고르는 옵션도 있다. 영어를 몰랐던 나는 어떤 키가 누르면 게임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그 키만 눌렀다.



  대단히 폭력적인 게임이다. 팬티만 입은 헐크 - 설정과 맞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그 때는 뭐 그렇게 불렀다 - 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게임이다. 나오는 사람들을 두들겨 패서 쓰러뜨리면서 우측으로 계속 이동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나름 정교한 기술 체계를 갖춘 게임이었는데, 엔터 키를 누른 상태에서 방향키를 눌러서 다양한(?) 기술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사실 발차기를 제외하면 한 스테이지당 2개의 고유 기술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 액션의 다이나믹함과 파워풀함은 가히 비교함에 이를 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인기를 끌던 프로레슬링 기술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래서 아마 헐크 호건의 이름을 따와서 헐크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화면 위로 흔히 말하는 에너지바, 생명의 개수 그리고 점수가 보인다.그 당시에 점수는 무의미했고, 오직 중요한 건 에너지바였다.



  기타 기술로 점프와 앉기가 있다. 점프는 공격하는 기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회피를 위한 기술이다. 적을 피해 우측으로 전진할 때 유용했다. 앉는 기술은 적의 공격, 특히 날아오는 핸드백 공격을 피하기에 적합했으며, 앉은 상태에서 엔터 키를 누르면 손으로 뭔가를 하는 동작을 한다. 손으로 상대의 발을 잡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이 그 기술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이 때는 쓰러지기만 하고 에너지는 닳지 않는데,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큰 쓸모가 없는 기술이다.



  가장 흔한 적은 칼을 든 아저씨들이다. 지금 보니 대머리에 주변머리는 백발인 할아버지들이다. 대머리 할아버지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달밤의 길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연유를 알 수 없다. 물론 그런 할아버지들을 목 조르고 집어 던지는 헐크의 사연과 심정도 알 길이 없다.


  연장자 불경의 대가다. 적의 공격으로 에너지바가 바닥나면 저렇게 쓰러진다.

  하기야 이해가 안 되는 건



  저 아줌마랑 고릴라(?)도 마찬가지다. 달밤에 아줌마 - 어쩌면 할머니일지도 모른다 - 는 핸드백을 집어던지고 고릴라는 주먹질을 한다. 물론 맞으면 에너지가 닳는다.



  이 게임에서 가장 까다롭고도 흥미로운 존재가 바로 저 개와 난쟁이 바바리맨이다. 개의 경우 헐크를 향해 점프를 하면서 공격하는데, 맞으면 치명타이다. 개를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개가 점프할 때를 노려 공주에 떠있을 때 발차기로 때리는 것으로,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다. 또다른 한 가지는 앉아서 개를 만지는(?) 것인데, 잠깐 만지고 있다가 놓아주면 위로(?)가 된 개는 화면 밖으로 나간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개가 몸을 뒤집고 귀여움을 받는 장면이 아닌가 싶은데, 화면상으로는 어째 어정쩡하다.

  저 난장이 바바리맨은 화면에서 기웃거리고 있다가 바바리를 열고 시한폭탄 또는 날개 달린 하트(!)를 내놓는다. 시한폭탄은 재빨리 앉아서 조치하지 않으면 터져서 화면 어디에 있든 간에 타격을 입게 된다. 날개 달린 하트는 에너지를 채웠는데, 대체 시한폭탄과 하트를 왜 갖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 게임에서 나름 보스급의 적이다. 바닥에서 굴러다니면서 - 화면상으로 보면 구부린 무릎에 손을 대고 구르고 있다 - 헐크 앞에서 일어나 주먹질을 한다. 구르는 몸에 발이 걸리면 에너지가 닳고 또 행동이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공략이 곤란했다. 아니, 그 때는 나름 수월하게 극복했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꽤 어려운 상대이다. 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은 구르다가 일어나면서 즉시 주먹질하는 그 때였는데, 구르다가 언제 일어나는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감각이 필요했다. 지금의 나에겐 그런 감각은 없다.



  저 파란색 복장의 뚱보도 나름 보스급이다. 내가 처음에 저 뚱보를 접하고 당황했던 것은, 스테이지 고유의 기술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뚱보에게 잡아서 던지기 등의 기술을 시도하면 오히려 내가 뚱보 밑에 깔렸다. =_= 한편 뚱보의 공격기술은 두 손으로 배를 잡고 올려서 치는 기술인데, 그걸 맞으면 헐크는 뒤로 날아갔다.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수 차례 시도하다가 기어이 성공한 것은 뚱보가 바로 코앞에 왔을 때 발차기를 해서 전환하는 뚱보의 등을 때리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오토바이 등의 독특한 보스급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도저히 거기까지 진행할 능력이 안 된다. 이 게임에서는 여러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기술이 없고 또 그 기술의 동작이 컸기 때문에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 타이밍이 중요했고, 한 화면에 적이 여러 명 나오면 기술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게임에 엔딩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모른다. 이 게임에 매달렸던 그 시절에도 엔딩까지 간 적이 없고 중간에 꼭 죽었다. 대충 기억으로는 스테이지들이 반복되었던 것 같은데, 다만 한번 반복하면 그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특히 칼을 든 할아버지들의 행동이 거의 칼춤 수준으로 승화하여 상대하기 버거웠다.

  지금 해보니 알게 된 건데, 이 게임의 공식적인 결과는 점수기록이었던 것 같다. 그 때에는 죽은 후에 나오는 이 썰렁한 화면이 점수순위인지조차 몰랐고 그냥 엔터 치고 넘어갔다. 지금 해보니 중간 스테이지 정도만 가도 점수순위 1위를 할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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