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9.

도스게임 『워로드 2 디럭스(Warlords II Deluxe)』



도스게임 『워로드 2 디럭스(Warlords II Deluxe)』


『워로드(Warlord III)』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게임잡지의 부록 CD에 수록되었던 맛보기용 데모 버전 게임을 통해서였다. 『워로드 3(Warlords III)』의 데모 버전이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조작하는지 몰라서 쩔쩔 매다가 이것저것 건드려서 어쩌다가 겨우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정품(?)을 접하게 된 것도 역시 게임잡지의 부록이었다. 무려 한글화가 된 정품이었는데, 그러한 정성 어린 투자에 비해 아마 게임 패키지 시장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이른바 실시간전략 게임이 크게 유행했고, 『워로드 3』는 그러한 대세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 물론 유행에는 둔감하던 입장에서 『워로드 3』는 정말 재미있었고, 아마 내가 해봤던 게임 중에서 제대로 천착한, 그래서 엔딩까지 구경한 얼마 안 되는 게임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 『워로드 2 디럭스(Warlords II Deluxe)』를 살펴보는 건 오히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었다. 이 게임을 찾아 즐긴 건 순전히 『워로드 3』가 재미있었기 때문이고, 『워로드 2』 역시 다르지 않았다. 참고로 『워로드 2』는 1993년작이고, 디럭스 판은 1995년작이란다.




  'SSG'는 전략게임과 관련해 몇 번 들어본 이름이다. 그 회사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고 해본 게임은 고작 위에서 언급한 게 전부이다.





  저 깡통을 뒤집어쓴 머리는 게임을 하면서 수시로 봐야 한다. 게임 내내 부담을 부가하는 존재로서, 전황이 어느 순간부터 기울어지면 머리통만 불쑥 나와서 뭐라고 한다.

  이 게임은 개별 시나리오들이 풍부하다. 사실 모든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목적과 구성요소들은 동일하다고 봐야 겠지만, 맵의 스케일과 도시 개수, 유니트의 종류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판타지 세계에서부터 미래의 SF적 설정 그리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 문명, 근대 유럽 등의 역사적 상황을 설정한 - 물론 설정에 맞춰 지도만 가져왔을 뿐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멀다 - 시나리오들도 있다. 특이한 설정의 시나리오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종교전쟁(Holy War) 시나리오는 역사상의 종교전쟁이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등 종교세력 간의 전쟁을 설정하고 있다.




  「쌍둥이탑(Twin Towers)」이라는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그리고 국가와 인공지능의 수준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의 인공지능은 나름 똑똑한 편이다. 『워로드 3』에서 그랬듯이,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확장을 추구하면서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한 턴이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이제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은 턴방식의 전략게임으로, 국가들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조작할 기회를 갖게 된다. 상대방이 조작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지켜보는 것 뿐이다. 다만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지 않으면 자칫 적군의 위협적인 이동이나 공격을 놓칠 수 있다.





  첫 턴에는 영웅(Hero)을 선택하고 도시에서의 병력 생산을 확인해야 한다. 영웅은 군대의 전투력에 영향을 끼치고, 유적(Ruin)을 탐험하여 돈과 아이템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전투나 탐험을 하면서 경험치가 축적되어 레벨과 능력이 상승한다. 다만 영웅 단독의 전투력은 결코 높지 않은 편이라서, 여타 병력을 동반하지 않으면 적군에게 공격당해 죽기 쉽상이다.

  도시에서 생산되는 병력은 각 종류마다 생산에 필요한 턴수와 능력치, 운용비를 갖고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개 능력치가 좋은 병력일수록 생산에 걸리는 턴수도 많다. 짧은 턴수 동안 약한 병력을 많이 생산해서 대규모로 활발하게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강한 병력을 소수 생산해서 응집력 있는 군대를 운용할 것인가, 그게 이 게임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전쟁은 생산체계를 요구한다. 새롭고 우수한 군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돈을 들여 생산시설을 구입해야 한다. 병력의 종류가 많은데, 이 게임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는 병력의 종류는 아마 대단할 것이다. 다만 이렇게 많은 종류에 비해, 정작 사용할만한 그리고 실제로 사용하게 되는 병력은 제한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주 싸게 구입해서 빨리 사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아주 강력하거나, 두 가지 사항 중 하나를 충족하는 병력을 사용하게 된다.





   이 전쟁의 목적은 상대방의 모든 도시를 점령하여 상대방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도시 점령이 게임의 초점이 된다. 초반에는 주인이 없는 중립도시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점령하여 영역을 넓히고, 점차 강력한 군대를 생산하여 다른 국가들을 멸망시켜야 한다.

  전투는 도시를 비롯한 모든 이동 가능한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군대를 적군 또는 도시의 바로 옆에 접근시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데, 짧고 간결한 싸움이다. 병력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늘어서고 서로 차례차례 죽고 죽이다가 마지막에 병력이 남은 편이 승리한다. 전투의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병력의 능력, 영웅의 영향력, 지형 등인데, 이러한 요소들의 계산에도 불구하고 임의적인 승패가 상당히 많다.

  전투를 할 때 싸우는 순서 역시 변경이 가능한데, 사실 기본 설정이 일반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순서라고 볼 수 있다. 약한 병력에서부터 시작해 강한 병력으로의 순서가 전투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승리를 하면 도시에 대한 처분(점령, 약탈, 도시 파괴 등)을 결정하게 된다. 그대로 점령하면 도시의 생산시설들을 그대로 인수하여 이용할 수 있다. 약탈을 하면 생산시설은 없어지지만 돈이 들어온다. 그리고 도시를 파괴할 경우, 말그대로 도시가 완전히 사라지고 복구가 불가능하다. 도시를 파괴하는 명령은 상대 국가의 성장과 병력생산을 방해하기 위해 이용하게 되는데, 특히 적국이 내 영역의 도시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기 시작하면 곤혹스럽다.




  이 게임에서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각 도시에서 생산된 병력들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소유한 도시가 늘어나고 도시들이 저마다 병력을 생산하는데 이걸 하나하나 클릭해서 이동시키는 건 고역이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도시에서 생산된 병력을 다른 도시로 벡터(vector)를 지정해서 자동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규모 병력을 간단히 집중시켜 전쟁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전쟁 중에 전세가 불리해진 국가는 평화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는 외교 부문이 있지만, 사실 실제 게임에서 그렇게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낼 게임이다. 휴전에 응하지 않는 경우 평화사자의 목이 잘리고 도시의 문에 공개전시된다. =_=




  영웅이 유적을 탐사하면 몬스터, 현자(Sage) 등이 나온다. 몬스터를 죽이면(오히려 살해당할 수도 있다) 아이템이나 돈 등을 얻을 수 있고, 현자는 아이템의 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리고 유적에서 병력이 나와서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좋은 건 역시 돈이다. 돈을 모아 강력한 유닛을 생산하는 게 전쟁에 훨씬 이롭다. 전쟁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유적을 탐험할 필요가 있긴 한데, 게임에서 엔딩을 보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전투에서 승리하다보면 병력이 메달를 수여받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전투의 특성상 조작할 여지가 없이 거의 임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메달 수여와 동시에 능력이 상승된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능력이 상승된 병력을 보존하면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게 쉽지 않다. 메달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병력은 결국 알게 모르게 소모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영웅의 경험치가 일정한 수치 이상으로 축적되면 레벨이 상승한다. 그런데 정작 전투에서는 다른 변수들이 많고 또한 임의적인 면이 크다보니까 영웅의 레벨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영웅의 레벨이 웬만큼 높지 않는 한, 전투를 수월하게 하는 방법은 비싸고 강한 병력들을 다채롭게 조합하는 것이다. 제병합동의 정예병력을 구성해 몰려다니면 거의 무적의 위세를 자랑한다. 반대로 적국이 그러한 군대를 거느리면 역시 정예병력으로 대응하든가 아니면 그 군대를 피해 다니든가 해야 한다.




  뭐 어쨌든, 승리했노라! 적국들을 모두 멸망시키면 시나리오는 승리로 종료하고 자축하는 화려한 동영상이 나온다. 제작진의 성의에 새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사실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설정할 때 대단히 좁은 규모의 맵에 인공지능을 낮추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시나리오에 따라 도시가 100개 정도쯤 되면 정말 어렵다.

  『워로드』 시리즈와 더불어 연상되는 게임이라면, 역시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Heroes of might and magic)』 시리즈이다. 턴방식, 영웅의 등장, 도시에서 군대를 모아 전투를 한다는 개념과 몇 가지 조작 면에서 두 게임은 서로 닮았다. 그리고 전투의 재미 면에서는 역시 병력들의 싸움을 직접 조작할 수 있는 후자가 훨씬 낫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 역시 맵의 거대함과 병종의 (과도할 정도의) 다양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한 듯 하면서도 호기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치밀함과 대담성을 가진 인공지능과의 싸움이 큰 재미를 준다. 또한 영웅이 없이도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영역에 걸쳐 대규모 이동과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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