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7.

서태지와 아이들 『Live & Techno Mix』 (1993)


서태지와 아이들 『Live & Techno Mix』 (1993)




  서태지팬으로서 재미있는 질의이자 논쟁점 중 하나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솔로로서의 "서태지", 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할 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밴드로서의 음악을 본격화한 솔로로서의 "서태지" 편에 붙는 입장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음악과 활동을 객관적으로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원년팬이 아니고 은퇴 이후 4집 음반부터 좋아하기 시작한 입장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음악에 상대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5집의 미묘함, 6집의 충격력, 산뜻함과 발랄함으로 무장한 7집, 8집의 흥미로운 소리들, 이러한 일련의 인상에 비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소리, 특히 초기 1, 2집의 소리는 그렇게 친숙한 느낌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Live & Techno Mix』(1993)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1집 라이브 실황과 리믹스 곡들로 다소 불분명한 정체성의 내용으로 채워진 이 음반은 당시 서태지가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고 또 어떤 음악을 추구했는지 일면을 보여준다.

  라이브 실황의 서태지는 미성의 보컬이자 댄서이면서 또한 어눌한 말씨의 어설픈 진행자이다. 어설프다는 평가가 다소 불공정할 수도 있겠는데, 요즘 무대 위의 톱스타들이 보여주는 그런 자연스럽고 능숙한 진행은 아니다. 아니, 이주노와 양현석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이다. 미리 준비를 제대로 못한 건지 아니면 실수를 한 건지는 몰라도 멘트들은 서로 따로 놀고 "식사했어요?" "여자만 온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다 어디 갔어요?"(무대에서 왜 그런 걸 묻는 걸까) 같은 뜬금없는 말도 나온다. 언뜻 보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언변이 영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떠오르는 수많은 정념 중 하나는 "막상 내가 그들에게 해야할 말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관중의 환성으로 봐서는 중간중간에 무슨 모션이 있는 모양인데 알 길이 없는 게 궁금하다. 하여간 작금의 서태지가 얼마나 말솜씨가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다.

  또한 「난 알아요 Blind Mix」에서 당시 서태지식 영어 발음을 들어볼 수 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정직한 한국산 영어 발음으로 제대로 굴리지도 못하면서 어쨌든 발음은 하는 게 듣기 민망하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발음이 대중문화상 통할 수 있었던 게 당시의 한국이었는데, 그 이후 해외교민 출신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국적 인상을 이용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좀더 굴리는 빠다식 발음이 일반화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관한 거의 병적인 강박증으로 시달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실상 못하는 건 그냥 못하는대로 못하는 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환상 속의 그대 Part II (Techno Mix)」의 처음 나오는 귀여운 목소리가 "Hey man! It's me, Bart Simpson."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리믹스 곡들은 대체로 비트를 강조하는 테크노 지향으로 특히 「환상 속의 그대 Part IV (Techno Super Club Mix)」가 인상적이다. 본래 비트 위주로 다소 단순한 인상의 곡이었던 「환상 속의 그대」에서 좀더 비트가 강조된 이 곡은 길이가 거의 7분에 이르면서도 느슨한 긴장을 지속시키는 치밀한 구성인데 당시 서태지가 이런 음악에 심취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당시 기성세대에게 시끄러운 잡음으로 혹은 무절제한 미국 음악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이러한 류의 음악은 이후 대중음악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서태지의 이러한 음악적 시도는 이후 2집의 「誰是我」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誰是我」에서 비트가 더더욱 강조되었다는 점은 당시 서태지가 추구하던 게 뭔지 추측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될 것 같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음 서태지의 활동 때는 「환상 속의 그대」나 「誰是我」를 새로 편곡해서 라이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환상 속의 그대」 리메이크는 이미 선보인 바 있지만 좀더 전위적인 인더스트리얼 락의 느낌으로 꾸민다면 재미있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 모든 것」을 원하는 모양던데 이것도 뉴메탈식으로 편곡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음반은 서태지와 아이들 초창기의 모습 그리고 서태지의 음악적 욕심과 변천을 보여주는 하나의 독특한 지표이다. 물론 그 지표란 걸 찾아보면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서태지가 무엇을 추구했고 또 어떤 무엇을 배제해오며 오늘의 서태지에 이르렀는지를 찾아보고 생각하다보면 시간과 인간에 대한 묘한 심상에 빠지게 된다. 그 때 서태지가 원하던 것, 지금의 서태지가 원하는 것 그리고 그런 서태지에게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던, 그 서태지라는 존재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의 서태지를 바라보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의 서태지를, 그 때 서태지에게 바라던 것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래저래 서태지는 재미있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기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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