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8.

015B 『Second Episode』 (1991)


015B 『Second Episode』 (1991)




  이 음반은 1995년 카세트 테이프로 구했다. 당시 대영AV가 투자를 아껴서인지 아니면 혹 재발매 음반이라서 그런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속지 구성이 너무 빈곤했던 게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별로 질감이 좋지 않은 종이에 사진 한 장 없이 가사만 빽빽하게 적혀 있었는데 어쩌면 1990년대 초 대중문화가 막 변화의 가속기에 들던 당시이기에 그 단순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걸 수도 있겠다. 참고로 카세트 테이프의 모양새 역시 그렇게 이쁘지 않다. 어쨌든 다른 015B 테이프와 함께 시간 있을 때마다 거듭 들었는데 다른 테이프가 늘어진 이후로 각성을 하고(음악을 기억하는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음악은 영원하지 않다!) 공테이프로 복사하여 여유분을 확보해야만 했다.

  015B의 두 번째 음반인  『Second Episode』는 90년대 초 대중음악의 양상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은 팝발라드 위주이면서 또 그러한 느낌에 따라 느리고도 어설픈 랩과 리듬 위주의 음악 역시 실험적으로(물론 크게 봐서는 어디까지나 미국 음악의 모방이지만)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이러한 음악들이 미디 위주의 편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물론 오늘날 복잡한 화성과 리듬을 갖춘 음악에 비교한다면 단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미디로도 허전하지 않게 멜로디를 꾸미고 감흥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여담으로 90년대 초에 전자 음악에 관한 비판과 논쟁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기계로 음을 찍고 샘플링을 하는 '쉬운' 음악이 과연 정신이나 철학을 담고 있는가, 진짜 음악인가의 문제였는데 물론 정석원은 전자 음악을 옹호하는(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공격적인) 입장을 펼치며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이야 그런 주제가 딱히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기는 하지만 당시 대중적인 뮤지션이 그러한 음악적 주제의 논쟁에 직접 참여하고 또 대중적 상식와 예의의 틀(창작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두 다리를 걷고 그저 비평자의 회초리를 기다려야 한다는 상식)을 벗어나 오히려 '건방지게' 비평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던 그 사실이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뮤지션의 적극적인 자부심은 당대의 유행과 변화를 동시에 담을 수 있었던 음악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이 음반이야 시대적 격차가 있는만큼(20년 전이다) 지금 들으면 "촌스럽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기는 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단순한 미디 위주로 편곡되어 있으며 또 페이드 아웃으로 끝을 맺는 방식 등으로 인한 반복적인 인상, 코러스와 합창마저 고식적인 느낌이며 전체적으로 열악한 음질까지 겹쳐 286 컴퓨터 게임의 소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촌스럽고 허전해보인다. 「4210301」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긴 하지만 「4210301」은 구성이 특별히 두드러지는 편이 아니며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경우 실상 랩보다는 나레이션에 가깝다. (물론 이후 015B의 음악적 행보를 생각해보면 랩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곡들을 포함해 「이젠 안녕」(이 곡이 015B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 「친구와 연인」, 「H에게」, 「그대의 향기」 등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감성이 톡톡 튀는 편곡은 2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를 초월하는 음악적 감각이 엄연히 존재함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당시(물론 이후 한동안으로도) 윤종신은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그저 스튜디오에서 잘 부른 게 아니라 실제 라이브 무대에서도 목소리가 잘 나왔다. 미성으로 팝발라드 뿐만 아니라 댄서블한 음악까지 소화해낸 것을 보면 당시 윤종신이 015B 객원보컬 체제의 중심이자 스타가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물론 세월의 흐름이 사람을 바꾼다는 진리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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