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7.

이승환 『Dreamizer』 (2010)


이승환 『Dreamizer』 (2010)




 예전의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이승환의 음악과 관련한 지금의 인상은, 그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수식적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순간에 확 끌리게 하는 매력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199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근성을 대변하는듯한 잡식성 취향과 화려한 사운드 동원은 분명 거기에 걸맞는 평가가 있는 것이지만 멜로디와 인상 면에서 이승환 6집 『The War in Life』(1999)이 던져 준 충격적인 실망의 선을 좀처럼 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취향이 변한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이승환에 대한 실망은 한창 붉으락푸르락(?)하던 사춘기의 감성 그리고 전자 기타의 신경 긁는 소리에 대한 본격적인 선호와 더불어 함께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부터 이승환 역시 "락"을 천명하기 시작했지만 이승환이 보여준 얼터너티브 혹은 뉴메탈적인 락은 언더그라운드의 악에 바침이나 서태지의 감각에 비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게 미성 보컬 때문인가 싶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승환 본인부터가 연주 역량에 그렇게 충실한 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다. 락이냐 발라드냐, 이 양자택일의 문제를 두고 이승환이 꽤나 고심하는 인상을 던져준 적이야 있기는 있지만, 그럼 과연 이승환 스스로가 그런 정체성의 변화 혹은 고착을 위한 어떤 노력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본다면 답은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혹 이승환의 락이란 어쩌면 음악 작업진에서 락을 하는 작편곡자들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어느 정도 반영됐을지 모르겠다. 『Dreamizer』에서도 백화점 진열대식 구성은 여전하다. 장르로 보자면 「반의 반」으로 대표되는 발라드에서부터 댄스, 락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고 고전 현악 연주와 전자 기타, 합창까지 동원하는 소리도 가지각색으로 이런 점에서 보면 이승환은 무언가 확실히 고집하는 방향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의 인상을 구현해내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과 방식이 거의 형식화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기야 이전부터 워낙 동원하는 게 많았으니 더 이상은 뭔가 특별히 두드러지는 요소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향의 결과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확실하다. 락밴드 연주와 고전 현악의 조합은 그 자체가 딱히 신선하지는 않지만 거의 15년 간 그러한 방식을 나름 지속해온 이승환의 감각은 결코 평이한 게 아니다.「Reason」의 분위기와「개미혁명」의 화려한 절정은 몇 번을 들어도 흥미가 당긴다.

  다만 곡을 들은 기억에 흡인력을 부여할 멜로디나 혹은 그것에 버금갈 결정타가 있느냐를 따져보면 불안하다. 「단독전쟁」, 「개미혁명」은 부분적으로 빛나는 소리에 비해 전체적인 선율에는 별 감이 없다. 반면에「반의 반」,「Reason」, 「내 생애 최고의 여자」와 같은 곡들은 좋은 멜로디와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문제는 그러한 것들 대부분이 새로운 인상을 돌출시키기보다는 이승환에 대한 기억을 재확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한한 일이지만 그러한 기억의 되새김이 이 음반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A/S」와「완벽한 추억」을 최고의 곡으로 꼽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1990년대와 이승환을 무난하게 회상시키는, 가장 탁월한 느낌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찾는다면, 잘 모르겠다.

  사실 이 음반에 혹평을 가하는 게 묘한 일이긴 하다. 결코 못 만든 음반은 아니니 말이다. 아마 국내 주류 음악시장에서는 이 정도의 소리에 근접한 음반이 그리 많지 않을테고 특히 요즘은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을 내걸고 이런 대단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승환이라는 명성과 별개로 이 음반은 뛰어난 작품이고 지금이 90년대라면 시장에서 수십 만 장이 팔려도 이상하지 않고 또 지금이라도 그 정도는 팔려야할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자꾸 과거와 비교되는 건,그 과거의 연장선 혹은 그것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단점이나 굴레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되새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 듣는 이와 뮤지션 양쪽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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