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7.

Linkin Park 『A Thousand Suns』 (2010)


Linkin Park 『A Thousand Suns』 (2010)




  Linkin Park에 대한 음악적 기대는 『Minutes To Midnight』(2007)를 중요한 기점으로 하고 있었다. Limp Bizkit의 영광, 신나게 휘젓던 힙합과 락 사운드의 중간 지점에서 소위 Hybrid Theory의 매력을 한껏 즐긴 이후 접하게 된『Minutes To Midnight』의 물렁함은 어떤 결정적인 지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단물이라고는 한방울도 남지 않았을 듯한 뉴메탈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어떤 음악 혹은 어딘가를 지향할 것인가. 더욱 강렬한 메탈을 할 것인지 아니면 좀더 썰렁하거나 물렁한 팝을 지향할 것인가. 그리고 음악을 즐기는 입장에서 Linkin Park 음반을 계속 구할 것인가 아니면 관심을 끊을 것인가. 물론 결과가 전자이든 후자이든 간에 일단 변화의 지점이 될 것 같은 4집을 접해봐야 얘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선공개된 「The Catalyst」의 첫 인상은 실망과 기대의 반반이었다. 전체적으로 일렉트로니카 성향의 틀에서 일렉 기타와 베이스는 이전보다 더욱 배경음의 자리로 물러났고 말랑말랑한 전개 끝에 극적으로 치솟는 보컬 역시 없었다. 이렇게 기대의 항목에 걸맞는 요소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The Catalyst」는 나름 오밀조밀한 소리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갖춘 좋은 곡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그리고 아무래도 이 곡은 앨범에서 가장 약한 곡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기대는 빗나갔고 「The Catalyst」는 강렬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를 과감히 버리고 좀더 말랑하고 느슨한 느낌으로 돌아온 이들의 변신에는 나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The Requiem」에서부터 시작해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성은 오밀조밀한 전자음과 멜로디의 조화이다. 꽉 들어차는 소리로 강렬하게 밀어붙이고 휘감기는 연주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양상에서 트렌디한 팝의 인상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Burning In The Skies」와 「Waiting For The End」, 「Iridescent」 등은 체스터의 감미로운 보컬 멜로디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어 혹 다른 남녀 팝싱어가 불러도 그 본래의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할 느낌이다. 지금에서 보면 이런 건 『Minutes To Midnight』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라고 볼 수 있는데, 팝적인 선율감이 꼭 나쁠 것까지는 없겠지만 Linkin Park 최고의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여담이지만 그 뭐라고 했더라, "이제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말했다던 보컬 누구를 연상시키는데, 생각해보면 보컬의 변화가 아쉽다는 게 양쪽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라는 점이 재미있다.

  물론 이 음반을 즐길만한, 이전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거리는 찾을 수 있다. 음반 전반에 흐르는 정서, 음습하면서도 통렬한 현실 속에서 자각과 반성(혹은 자학), 위안을 갈구하는 자아 성찰의 분위기는, 조밀한 배치이면서도 자극의 선을 좀처럼 넘지 않는 전자음의 연속으로 점철된 드라마틱함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When They Come For Me」와 「Wretches And Kings」에서 이전의 특유한 진행이 재생될까 싶은 기대를 뿌리치고 보다 비트를 강조하는 일관성을 보이는데, 여기서  Linkin Park가 스스로 자신의 틀을 해체하고 재조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Robot Boy」는 성가를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느낌과 힘을 불어넣어주는 격려의 메세지, 반복적인 구성이면서도 묘하게 절정을 이끌어내는 인상이 매력적이며, 「Blackout」은 강박적인 타격감과 느슨한 듯 하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는 진행이 어울리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해체와 재조합은 「The Catalyst」에 이르러 극적인 정점에 이른다. 외따로 선공개된 「The Catalyst」가 나름 듣기에 괜찮은 음악이었다면, 『A Thousand Suns』의 「The Catalyst」는 이전의 점진적인 해체 과정에서 축적된 긴장들을 일시에 응축시켰다가 자연스럽게 정화하는 완충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다소 불완전하고 또 중심이 막연하여 혼란스러운 인상이 없지 않아 있지만 Linkin Park의 자기 해체의 실험은 발전적인 것으로 긍정할만 하다. 그러한 점에서 일견 Limp Bizkit의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dog Flavored Water』(2000)을 연상시키는데, 물론 변화에 따른 기존의 음악적 매력과 컨셉의 상실 그리고 여타 음악과의 유사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Linkin Park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Minutes To Midnight』의 애매함과 밋밋함을 극복하면서 자기 나름의 색채를 꾸준히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색채를 나름의 골조와 패턴으로 엮으면서 앞으로 어떤 구성체에 이를 것인지 기대할만하다는 게 『A Thousand Suns』의 암시이자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건, 음반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느낌에 대한 것이다. 시작부터 신과 죄, 구원을 언급하는「Requiem」이고 가사 곳곳에는 파멸과 회개의 암시가 편재하며 「Robot Boy」와 「Fallout」은 전자음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롭고도 장중한 분위기가 성가와 기도를 연상시킨다. Linkin Park가 예전부터 상대적으로 메세지나 표현이 건전한(?) 축에 들어가니 종교적인 인상이 있다는 게 딱히 크게 이상하게볼 일만도 아니겠지만, 일견 자학적인 반성이나 묵시록적인 표현들은 특정 종교의 주요 테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가사 전반을 봐서는 종교에의 귀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절대적인 존재나 추상에 맞서는 자기인식의 인상이 강하며, 또한 이러한 뉘앙스를 현재 진행 중인 거대 체제의(과거에는 神이 주재했던) 폭력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에 빗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교적인 분위기와 수사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지향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반어적인 패러디의 영감에 가깝다. 결국 『A Thousand Suns』가 말하는 것은 까마득한 추상의 개념을 조건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에 위치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각성과 진보를 위해 눈앞을 가로막고 세상을 억누르는 거대한 "the machine" 혹은 "this business"의 정체를 직관하고 극복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 선호곡
    1. Robot Boy
    2. The Catalyst
    3. Burning In The S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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