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7.

015B 『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 』 (1996)


015B 『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 』 (1996)




  이 사회에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오직 "서태지"라는 코드로 인식하고 또한 그런 집단 기억을 부추기는 언론과 매체로 인해 과거 소수팬들의 추억으로 묻혀져 버린, 혹은 묻혀질 위기에 있는 대중음악 뮤지션을 손꼽는다면 일단 먼저 신해철과 015B를 떠올리는 게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중에서 015B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학벌의 유명세와 함께 독특한 음악적 감성으로 90년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형제 뮤지션 그룹이었고 그 위세가 서태지나 신해철에 버금갈만한 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다양한 장르를 음악적 실험성으로 포섭하며 90년대 음악시장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수놓는 데 한몫 했던 이들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시대에 10대나 20대의 시절을 보낸 이들 중에는 서태지보다는 015B에 대한 기억이 더 뚜렷한 이들도 있으리라.

  다만 015B의 디스코그래피는 락이라는 장르적 측면에 있어서 서태지나 신해철에 비해 그 매력의 수준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사실 015B의 인상은 락이나 테크노와 같이 전위적인 음악성보다는 가볍고 말랑말랑한 댄스, 발라드 류의 감성에 가까우며, 심지어 시사적 메세지를 담은 작품들조차 그 메세지의 성격에 걸맞는 비판적이며 전위적인 음색이 아니라 오히려 국정홍보처의 캠페인 노래처럼 따뜻하며 가벼운 느낌을 담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색깔이 015B 자신들이 나름 추구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서태지나 신해철이 보여준 것과 같은 메세지의 파괴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한 015B의 음악적 인상을 떠올려 볼 때 이 여섯 번째 작품 『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 』는 마치 무더운 여름밤 거리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돌연변이 괴물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아니, 말그대로 돌연변이가 따로 없다. 고전 현악 연주로 구성되면서 모던한 인상의 음침함을 연출한 「일식」,  뉴에이지적인 명상 음악을 연상시키는 「성모의 눈물」, 짧은 피아노 연주 하나로 완결성을 이룬 「Femme Fatales」, 테크노 댄스 「인간은 인간이다」 그리고 「타락도시」와 「마르스의 후예들」에서 선보이는, NIne Inch Nails와 Marlin Manson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인더스트리얼 락 등 이 음반은 전반적으로 이전의 015B 음악과는 크나큰 격차나 일종의 단절을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 단절의 극치 혹은 돌연변이적 괴팍성이 하나의 총체적 성정으로 드러나는 건 다름 아닌 메탈,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발라드적인 보컬을 융합시킨 「21세기 모노리스」일 것이다.

  이 음반에서 015B의 실험은 전위의 극치를 달리기보다는 대중성과의 명확한 연결점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얼핏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테크노와 락 사운드는 곡의 흐름 전반에 걸쳐 있는 015B다운 무난한 멜로디에 잘 어우려지며, 온갖 자극과 취향이 서로 부딪치고 어긋날 부조화의 가능성은 충분한 완화의 과정을 거쳐 좀더 다가가기 쉬운 인상으로 다듬어진다. 이 음반은 쉽게 말해 015B가 자신의 대중적인 음악적 감성을 보다 전위적이고 거친 사운드와 조화시키며 나온 작품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음반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대중적인 작품을 산출했던 서태지의 음악 스타일과 유사한 면모가 있다.

  015B와 서태지 간의 차이점이라면 본래 락 음악의 기반이 뚜렷하여 메탈의 성격이 강한 서태지에 비해 015B의 경우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중적 감각성으로 인기를 끌었던 그룹으로써 그들의 6집 음반은 메탈보다는 오히려 일렉트로니카적인 기반이 두드러진다. 특히나 「인간은 인간이다」와 「21세기 모노리스」, 「타락도시」에서 보여준 섬세하며 감각적인 비트 구성은 정석원 특유의 사운드 구축에 대한 편집증적인 면모와 함께 015B가 추구하는 음악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음반의 독특한 면모는 다름 아니라 본래 락이나 테크노 장르에 기반하지 않은 뮤지션이 자신의 대중적 감각으로써 보다 전위적인 스타일들을 독특한 색깔의 일정한 테마 아래 융합시켰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서태지와 달리 정석원에게는 이런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고 무거운 테마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대중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이런 색깔의 작품은 결코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상품으로서 먹히지가 않는다는 원리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다를 게 없다. 일종의 문화적 트렌드로서의 시사적 메세지가 아니라 인류 문명 자체에 대한 비관과 그에 걸맞게 중후하며 암울한 분위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대중음악 시장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가능한한 대중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향락적이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매체들이 주도하는 음악시장에서 이런 음악은 주요 매체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점 하나로 사실상 대중적인 성공을 바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015B 스스로도 그 정도의 일상적인 원리는 알았을 것이고, 그랬기에 그룹으로서의 공식 활동 종식을 각오하는 마지막 작품으로서 그야말로 자신들의 욕심대로 만든 대중적이되 상업적이지는 못한 이 음반을 시장에 내놓는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음반의 파격성을 015B 스스로가 이어가지 않고 결국 이전의 가볍고 밝은 느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결국 015B 본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그만큼 6집의 돌연변이적 성격을 뚜렷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음반을 볼 때 그 특별한 의의를 되새기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중음악 뮤지션으로서 과감히 행하는 사운드의 실험성, SF적 분위기와 암울한 메세지를 갖춘 매니아적인 테마를 동시에 구현한 이러한 작가주의적 시도가 다시 한번 나올 수 있을까? 국내 대중음악 뮤지션으로서 이런 작품성에 다가갈 역량과 용기를 겸비한 이가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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