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7.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와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와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를 처음으로 접한 건 대전 은행동의 계룡문고에서였다. 한창 군사물에 망상의 열을 올리던 처지에서 이러한 도서를 발견한 건 일종의 행운으로 생각됐고 역시 그 행운을 놓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 쭈구리고 앉아 시리즈를 속독으로 독파해버렸다. 이미 도서관에서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을 접했기에 그 내용 모두가 그렇게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2차대전에 대하여 글과 그림의 적절한 조합으로 그렇게 읽기 쉬운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것이었다. 이후 고등학교 친구가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를 학교에 가져왔고 틈만 나면 그 책을 갖고 놀았(?)다.

  사실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는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과 내용상으로 비슷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그저 비슷하다기보다는 똑같은 소재의 내용에 똑같은 서술 그리고 똑같은 그림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인용이고 비판적으로 보면 표절의 음영이 다분하다.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는 참고자료 목록을 제시하고 있으나 쿠르스크 전투 등의 일부 내용을 제외하면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표절을 해서 나쁘다느니 큰일났다느니 그런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문제는 그런 방향으로 나름 깊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여기서 생각해보는 건 군사물 자료에 대한 추억이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에는 군사물 자료라는 게 그렇게 흔하거나 접근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도서 중에서 2차세계대전 관련 내용이란 대개 군사보다는 역사라는 보다 광범위한 학문적 차원에서 다루는 경우였고 그나마 나름 군사적으로 접근한 책들 중에는 수십 년 전에 출판된 일본 책의 번역서들이 많았는데 서점에서 이런 책을 접할 일은 없었고 대개 도서관 한켠에서 먼지가 한가득 쌓인 채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책들을 꺼내 펴보면 한자가 그대로 박힌 세로읽기에 드문드문 배치된 삽화는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은 단연 구세주적인 존재였다. 양질의 종이에 총천연색 칼라까지 포함한 삽화, 참전 군인과 민간인들의 세세한 인터뷰까지 실려 있는 풍부한 내용은 단연 (그 때의 입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것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머리통이 좀더 큰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 면에서 동부전선 편이 소홀하고 서술이 체계없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또 문체로 봐서는 혹시 이게 일본 번역물을 중역하거나 혹은 참고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긴 하지만(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하여간 그 책은 대단한 자료였고 이후 군사물 취미의 인식체계와 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과의 비교에서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는 좋게 말하면 상당히 친숙한 내용이었다. 거의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의 축소 편집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나름 유연하게 생각해보면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인용한 사정도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게 내용상으로 풍부한 다른 원전을 접하는 게 그리 수월치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른 취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군사물 취미에서 자료나 내용을 공유하는 일은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다. 다만 국내의 사정상 그 공유 내용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나쁘게 말하면 돌아다니는 군사물 자료라는 게 거기서 거기이다. 똑같은 내용을 이리 편집하고 저리 편집해봤자 공유 영역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를 게 없다. 특히 2차세계대전에 대한 자료는 원래 그 출처를 외국에 의존할수 밖에 없고 따라서 새로운 도서나 텍스트가 번역되어 공개될 때 비로소 새로운 컨텐츠가 추가되는 것인데 군사물 취미가들 중에 꾸준히 새로운 텍스트를 접하고 번역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한 텍스트를 확보하고 번역하며 나아가 학문적 신뢰성까지 부여하는 능력을 갖춘 고수들은 자신이 확보한 자료를 그대로 공개하는 걸 어느 정도 꺼리는 편이다.(정보를 배타적으로 독점하겠다는 욕구보다는 저작권과 학문성에 대한 의식 때문이니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외국 텍스트를 그대로 번역하여 공개하는 것도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다. 번역이라는 나름의 추가적인 노력이 있는 것일 따름이지 남의 텍스트를 제멋대로 가져다가 공개하는 것은 학문적인 면에서 표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인터넷에서 이러한 일이 워낙 흔하다보니까 나쁘다는 걸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 뿐이다. 나도 한 때 그랬고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러한 저작권, 학문성 무시의 제멋대로 공유 덕택에 자료 갈증에 시달리는 취미가들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또 취미 활동의 구심점과 탄력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도 그런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표절이나 내용상의 오류 문제와는 별개로 2차 대전 군사물 자료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에 기본적인 지식과 흥미를 확대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서였음은 틀림없다. 다만 지금 갖고 있는 나름의 의문은, 이왕 기존의 남의 것을 베끼는 거 좀더 다양한 참고자료로부터 양적인 균형을 맞추며 베꼈다면 그리 표절의 티도 확 나지 않았을 것이고 『타임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과 좀더 차별화된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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