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1.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정치적 색채에 대한 생각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정치적 색채에 대한 생각


  『은하영웅전설』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군대에서였다. 내무반의 침상에서 굴러다니던 지저분한 책들 중의 하나였는데, 고(故) 황장엽의 자서전과 더불어 말년의 시간을 보내기에 괜찮은 소일거리 중의 하나였다. 공교롭게도 그 두 가지 책은 나름의 유사점이 두드러졌는데, 전반적으로 허황되고 유치한 인상이 그러했다. 물론 그런 게 나름의 독특한 재미가 있었으니 읽기는 했던 것이다.

  그 시절에 그랬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이 소설은 뭔가 어떤, 꼭 필요한 균형을 결여하고 있다. 두 체제 그리고 두 주인공 간의 대치를 구도로 잡는 작품 치고는 균형이 안 맞거나 혹은 적어도 작위적이고 임의적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느낌이 강하다. 설정은 외형적으로 웅장하지만, 막상 그 내실에는 뭔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며 이것은 작품에의 진지한 심취를 방해함은 물론 심지어 작자의 의도에 대한 의심마저 초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작위성이 강함을 인정하면서도 대신에 깊은 정치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고 또 때로는 꽤나 민감한 문제를 다루려는 듯한 양상도 있긴 한데, 대개는 깊이 없는 가벼운 냉소와 어떤 전반적인 모순으로 귀결되는 느낌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체제의 양상을 묘사함에 있어 어떤 심각한 불균형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양상에 관한 묘사는 상당히 현실과 비슷하여 설득력이 있다. 여러 주체들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부정부패, 포퓰리즘, 파벌주의, 군국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대중의 반응, 경제적인 문제 등.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뿌리깊은 문제인지가 드러나고, 심지어 그러한 것들이 체제의 붕괴를 앞당기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른바 전제군주체제에의 묘사는 확연히 다르다. 영웅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에 구귀족을 제압하고 개혁을 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회적 문제는 "단숨에 해소"된다. 어떤 문제들이 있었고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모든 문제의 원인인 부패무능한 존재들을 절대권력자가 일소하고 선정을 베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한 해결책인가. 마치 전제군주제에서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대체 얼마나 단순하고 평면적인 양상의 사회이길래 그게 가능한 걸까. 그렇게 단순한 구조라면, 성계를 지배하고 우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기술, 인력, 자원, 행정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것도 영웅이 전부 배출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을 정치적 성찰의 기반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소설이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며 소위 명언들을 인용한다. 하지만 발언들을 꼽자면 현실 정치에 대한 냉소나 민주주의 비판(적어도 소설 내에서는 대단히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도 많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흐름은 "위대한 독재자" 신화를 지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타락하고 비효율적인 데 반해 건전한 독재체제가 극도로 우수함을 호소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소설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관점이 반드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영웅에 대한 환상이나 현실 문제의 깊이에의 도외시를 조장한다면, 과장일까? 물론 굳이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성향을 부추기는 요소들이 많다는 걸 염두하면, 이 소설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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