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6.

「대포의 거리(大砲の街)」 (1995)



「대포의 거리(大砲の街)」 (1995)


  논산훈련소에 있었을 때에, 일석 점호마다 일종의 정신교육이 있었다. 그 내용들 중의 하나가, 자세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병영에서의 생활 형식이 이상적인 사회 및 삶의 모범을 형성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이 병영식 생활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보고 듣는 구호라는 것이 거의 다 그렇지만, 이게 노골적으로 군국주의적인 내용이라서 기억하고 있다.

  좀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메모리즈(MEMORIES)』를 보았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기에 그 작품은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극히 막연하고 단정적이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훨신 앞섰다는 확연한 인상을 준 사건 중의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디지털로 조정하는 전기 밥솥이고.

  그 중에서 여전히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대포의 거리(大砲の街)」이다. 가장 짧고 단순해서 기억하기 좋기도 하지만, 전쟁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취향에 맞았던 것 같다. 모든 사람과 주변의 소재가 오로지 전쟁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 작품이 일본의 총력전 체제를 풍자했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근대 이래의 보편적인 또는 모범적인 국가사회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성인은 노동의 단위로 조직화되어 체제의 노력에 투입되고 어린 미래들은 체제가 제시하는 틀의 이상을 꿈꾸며 지향하는 교육을 받는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공동의 목표 그리고 규율, 서열, 근면의 윤리는 제도와 매체를 통해 일상에서 면밀히 침투되고 통제된다. 일본의 총력전 체제는 그것이 좀더 노골화되었던 것일 뿐, 모든 국가는 그것을 지향하고 또 수행할 준비를 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모습은, 예전에 또는 지금도 일부의 우리가 선전하고 지향해오던 것의 정체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세태도 바뀌면서 공동의 목표가 허상임이 폭로될 위기를 느낀다. 아니, 어떤 면에서 이미 폭로된 것이다. 제도에 의해 의식화되었던, 공동체에의 소속감과 충성심은 어느 순간에 환멸감으로 변한다. 효율을 위한 경쟁이랍시고 소속원의 삶을 방관하던 제도가 어느 시기에 정기적으로 공동체의 감성과 의무를 요구하는 때가 특히 그렇다. 다짜고짜 대포를 쏴야 한다고 떠드는데, 어쩌라는 건가. 포신은 녹슬었고 탄도계산방법은 잊어버렸으며 정비비용은 어떤 놈이 빼돌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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