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6.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어떤 작전과장에 관한 경험이 생각난다. 그 작전과장은 여러 모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데, 특히 참모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데 집착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모든 참모부서의 간부들, 심지어 행정병들까지 일일이 대면하여 보고와 업무 지시가 이루어져야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중대장과 소대장들을 임의적으로 소집하여 직접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물론 그는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작전 분야에 관해서 대단히 면밀하게 그리고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해나갔고 상급부대로부터도 평가가 좋았다. 문제는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다른 분야들은 방기된 채 엉망진창으로 되어갔다는 것이다. 정보, 인사, 군수 참모들은 작전과장의 압력 밑에서 작전과의 수요를 맞추고 보조하는 데 진력하면서 실상 작전과의 행정병으로 전락했다. 일방적인 지시와 요구가 남발되고 분야의 경계와 전문성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참모부 내의 그리고 참모부와 전투부대들 간의 긴장과 억압은 점점 더 커져서 마치 최후를 기다리는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잠재적인 곳에서 커져가던 문제가 표면화되는 시점에서, 결국 그 작전과장은 자신의 정해진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감사에서 걸렸던 것이다.

  이러한 파국적인 결과는 왜 일어났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독선적인 작전과장의 행태나 그것을 파악하고 제재하지 않은 부대장의 무감각과 나태에 대한 지적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작전참모가 바뀌어도 기본적으로 작전과 중심의 참모 업무는 바뀌지 않았고, 작전과장의 행태에 따라 작전과가 참모부서들의 경계를 먹어치울 잠재성은 언제든지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좀더 다양한 면에서, 일상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부분들에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각 참모장교들의 계급, 업무 평가 방법, 인수인계 관습, 부서의 공간적 배치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좀더 전통적이고 관례적인 문제일 것이다.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는 이러한 기억을 되새기게 한 책이다. 히틀러와 독일군 수뇌부가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며 결국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하고 여러 문제점들과 원인들을 분석해가면서, 최고지휘부와 전략의 결함이 단순히 히틀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좀더 역사적이고 복합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3군 간 그리고 민간분야와의 협조 및 통합의 부재, 선천적인 전략적 관점 결여와 이에 대비되는 작전에의 집착, 완전한 통제에의 환상은 히틀러의 집권 이전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결함이었고 이러한 결함들이 축적되어가다 폭발한 나치 독일의 전쟁과 패배는 히틀러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히틀러와 동조한 독일군 최고지휘부의 합작품이었다. 최고지휘부는 단순히 히틀러에게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히틀러와 타협하고 동의하여 전쟁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내부적이고 잠재적인 결함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켰다.

  이것은 비단 남의 얘기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작전과가 다른 참모부서들을 압도하는 양상이, 얼핏보면 일사불란하고 또 일종의 통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 다른 분야들의 갈등과 마비를 가져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통합이란 게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독일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제로서의 난해함 이전에 의지와 노력의 부족도 지적되어야 한다. 좀더 위로 올라가서, 군정권과 군령권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빈번하지만, 실상 그것이 진전되고 있다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도 있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적대적인 영향과 도발에 대한 지엽적인 조치가 우선시되고 신무기 개발과 배치의 선전이 눈앞을 가린 가운데, 국방개혁의 이야기는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대신에 군대가 자신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권력과 적당히 타협하는 관례는 계속되고 있다. 비행장 활주로는 꺾을 수 있지만 골프장만큼은 절대 사수하는 모습을 보면, 이 분야에 관해서 현실적인 전망은 포기하고 그냥 순수한 공상의 재미로 여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이 강조하시는 정신력도 자신들에게 비춰보면 일종의 공상 같은 것일 테니까 피장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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