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2.

남녀평등에 관한 짧은 생각



  가끔씩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접할 때 스스로 과연 난 남녀평등주의자인가 의문을 가져보는데, 아직 명확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전반적으로는 남녀평등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남녀평등으로의 진보를 가로막는 여러 가지 사회관습을 특별한 반감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과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남녀평등의 원칙을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관념이 실생활의 태도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녀평등 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의문 중의 하나는, 육체적인 성욕의 다양한 형태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욕이란 건 단순히 직접적인 성교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반영된 모든 언어적이거나 형태적인 것들, 문화적인 부분들까지 포함된다. 그런 사항과 관련한 논란들은, 때로는 여성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논리가 오히려 보수적인 성억압, 심지어 마초이즘적인 관행의 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학시절에 MT를 갔을 때 장기자랑을 했던 게 생각이 난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어쩌다가 여성에 관한 성적인 별명(연애의 기술에 관한 것이었지만)의 아이디어가 나오자, 대체로 양심적으로도 좀 걸리고 여학생들의 반응을 고려해서 그냥 사장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른 아이디어는 호스트 놀이였고, 이 아이디어는 그대로 통과되어 실천으로 옮겨졌다. 그 시절에는 그냥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 만일 반대로 남성의 성적인 별명에 관한 아이디어가 사장되면서, 호스티스 놀이가 실행되는 경우라면 이를 바라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성의 성상품화가 진행되는 현실에서 그것에 관한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고 여기서 반성과 절제를 요구하는 논리가 합의와 통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한편으로 남성의 성상품화 역시 진행되는 게 현실인데, 이에 관한 성토의 목소리는 거의 없다. 상품화 뿐만이 아니다. 남성의 외모, 경제력,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여성들의 시각 및 담론으로 인한 남성들의 인격, 인권적 피해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공공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굴욕감과 자존심이 얽힌 남성들 본인이 그런 이야기를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솔직히 밖으로 꺼내기에는 쪽팔린 이야기다), 그렇다고 여권신장이나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여기서 얘기한 것들이 남녀평등 문제의 본질이나 혹은 당장 현실적으로 급한 사항은 아닐 것이다. 다만 위의 사항들에 관한 논의와 합의가 없다면, 결국 남녀평등은 그 본질적인 진전을 이루기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성적인 농담으로부터 여성의 지위를 보호하자는 얘기는 있어도, 정작 여성의 농담에 관련한 남성의 구제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왠지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성억압자이자 마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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