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7.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를 읽다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를 읽다


  이제는 그 기억과 위치가 애매해진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통일은 여저히 공식적인 구호로서 남아있지만 분단체제의 비정상성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분단의 연장선에서 최악의 사태였던 한국전쟁은 이념투쟁에 대한 피로 및 환멸 그리고 역사교육의 부재로 인해 대중 속에서의 사회적 담론으로서는 기능을 잃은지 오래이다.

  한국전쟁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또는 선악 간의 투쟁 같은 프레임에 밀어넣고 그것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만, 실상 그 전쟁은 남북 양측이 주장한 민족통일전쟁 그리고 냉전이 열화된 세계전쟁이었으며, 그 현실을 살아가고 또 죽어갔던 사람들에게는 양극의 대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한반도 전체에 걸쳐 거대한 톱질을 한 것이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적대의식과 자기검열의 본능으로 충만한 인민 또는 국민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해방 직후의 불완전하게 구성된 국가는 역시 눈앞의 또다른 불완전한 국가와의 갈등와 위협에 본능적으로 적대했고, 파멸의 공포 그리고 완전한 승리에 대한 열망이 맞물리며 전쟁과 절멸에 대한 집착이 발생했다. 그리고 국가가 파멸을 피하기 위해 또는 승리를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주민에게 피아식별을 강요하고 적으로 식별된 또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을 분리하고 제거하는 것이었다. 국가에 대한 의식 이전에 전통적이고 오래된 계급적 모순, 여러 수준에 걸쳐진 계파갈등, 민족통일에 대한 열망, 국가관의 대립 등이 뒤섞인 공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방법은 모든 갈등의 강도를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국가적인 절대성으로 단순화하고 규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국가과 국민이 성립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한편으로 다른 민족들의 근대국가성립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갈등과 공통적인 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인 부분이고 혹은 성장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속의 실재하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는, 국가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치명적인 의문과 비판을 불러오는 게 당연하다. 국가가 진실로 윤리와 정의 그리고 국민의 공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러한 혹독한 비판을 수용하고 반성적인 성찰과 개선의 연구를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국가가 정의롭고 윤리적일 때에야 애국과 충성의 미덕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국전쟁을 잊으면 안 되는 진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외에, 이 책에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북한의 전시지배체제와 인천상륙작전 당시 군사적 대응, 유엔군의 북진과 중국 참전의 배경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 대부분이 이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사실들인데, 다른 역사적 사건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국가가 철저히 계획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작용하는 전쟁에서 우연들이 맞물리며 중대한 사건을 양산한다는 역사원리의 진실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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