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9.

『팬저캠페인 부다페스트 '45(Panzer Campaigns Budapest '45)』를 하다



『팬저캠페인 부다페스트 '45(Panzer Campaigns Budapest '45)』를 하다




  『팬저캠페인(Panzer Campaigns)』은 근래 나름대로 기대를 걸고 있는 시리즈이다. 2차 대전 관련 게임들이 실시간화, 고사양화하는 와중에 낮은 사양의 턴방식 워게임으로서의 미덕을 갖추면서 또한 지속적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게임을 시나리오만 바꿔서 내는 양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부다페스트 전투와 같은, 그 역사성에 비해 유명세는 너무 미약한 전투들을 소재로 하고 있음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그저 가볍게 여기던 부다페스트 전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Battle for Budapest - One Hundred Days in World War II 』를 읽으면서였다. 강대국들 간의 전쟁에서 자국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나약한 힘으로나마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점령과 전화를 피하지 못했던 헝가리의 사정은 묘하게도 우리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를 연상시키면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흔히 재미삼아 동아시아에서의 우리의 입지를 유럽의 정치외교적 구도에 대치시킬 때 많은 사람들은 독일이나 프랑스를 언급하지만, 실상 우리의 위치는 헝가리나 루마니아에 비유할 때 가장 적절하다.




  이 게임은 개별 시나리오들을 각각 즐기는 방식이다. 시나리오들은 저마다 턴의 길이와 전투공간의 넓이가 제각각인데, 10턴 정도의 제한으로 사단, 군단급 전투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이상 규모의 전역을 수행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물론 규모가 클수록 게임이 어렵고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시나리오들은 역사상의 전투들을 고증한 것이지만, 역사적 상상을 투영한 시나리오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상의 콘라트(Konrad) 작전에서 미처 적시에 완전하게 투입되지 못했던 독일군 병력이, 만일 제때에 전장에 투입되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시나리오에서는 당연히 헝가리 지명들이 나오는데, 역시 『Battle for Budapest - One Hundred Days in World War II 』를 읽을 때 느꼈던 난감함 역시 헝가리인의 이름과 지명을 부르는 문제였다. 외국어표기법을 찾아서 겨우 대충 부르는 방법을 정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명확한 발음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선택한 시나리오는 턴 길이가 가장 짧은 「441231_06: The First Punch at Tata」이다. 1944년 12월 31일에 독일군 제4 SS전차군단이 타타(Tata) 방면에서 기습을 가하였다가 소련군의 방어로 인해 결국은 돈좌된 공격 전투였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전투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일군이 공격하는 시나리오로서는 간단하고 쉬운 편이다.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최초의 인상은, 다름 아닌 고전적인 워게임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 시리즈였고, 실제로 게임제작진이 서로 겹치는 모양이다. 물론 『배틀그라운드』에 비해 좀더 게임이 발전했고, 또 내 영어 실력도 발전했다. =_= 여타 워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 역시 메뉴얼의 도움없이는 어려운데 다행히도 메뉴얼의 영어가 대단히 기계적으로 간단하고 쉽다. 메뉴얼의 서술이 쉽고 내용도 충실한데, 다만 즐기는 걸 수월하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건 아니다.





  전장의 유닛들은 중대, 대대 등의 부대 단위로 전투서열을 구성하며, 한편 각각의 유닛은 보병, 전차, 포병 등의 병과별로 역량과 기능을 보유한다. 예를 들어 보병중대는 오직 보병으로만 나타나며, 보병중대가 보유한 기관총, 박격포 등의 화기는 표시되지 않는다.

  시나리오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중요지점들을 점령해야 한다. 대체로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중요지점을 점령하는 점수가 훨씬 크기 때문에, 역시 중요한 건 전선을 돌파하여 신속하게 적의 후방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물론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여러 병과 간의 제병협동이 필요하며, 전투서열 상으로 전투부대와 지휘부 간의 접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게임에서 적의 유닛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방법은, 사격과 포격 및 폭격으로 적 유닛을 혼란시키고 또한 가급적 포위, 고립시켜서 전투역량을 최소화시킨 뒤에 돌격으로 섬멸하는 것이다. 여타 워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에서도 적 유닛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ZOC의 기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ZOC를 활용하면 적 유닛의 이동을 제약하고 수월하게 고립시켜 섬멸할 수 있다. 물론 적 유닛을 하나하나 포위, 섬멸하는 것에 충실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중요지점을 점령하기 위해서, 적 유닛 섬멸의 과업은 후속부대에게 맡겨두고 기갑 및 기계화병력은 전과확대를 위해 계속 전진할 필요가 있다. 2시간 단위의 턴은 병력의 상태가 어떠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짧고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전반적으로 『배틀그라운드』의 계승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작방식은 그렇게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워게임 역시 즐기기 위한 게임이고, 당연히 즐기는 이의 입장에서는 화면을 보고 조작하는 데 있어 편의성을 요구하게 된다. 선택에 따라 활성화된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끔 하는 정도의 배려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선택한 유닛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메뉴얼 내용을 숙지해서 미리 알고 있든가 아니면 명령목록을 직접 일일이 누르면서 가부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도하 과업과 관련한 공병의 기능이 그렇다. 맵에서 우클릭 팝업메뉴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희한하게 생각될 정도이다.

  그리고 여러 창에서 나타나는 정보나 기능 간의 연결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정보창의 내용이 선택은 되지만 클릭해봤자 아무런 기능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워게임이라는 분야의 본질적인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이 게임의 조작방식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배려가 부족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할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불편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문제점은, 맵에서 각 부대의 단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없다는 점이다. 각 전투부대는 대개 중대, 대대 단위인데, 이 단위수준을 구별짓는 표식이 없어서 일일이 유닛을 선택해서 확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대와 중대 간의 전투력 격차가 상당하고, 부대기호에 약간의 추가적인 표시를 하면 해결되는 아주 명확하고 간단한 문제인데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게 의아하다. 화면과 조작 면에서 『TOAW3』와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




  물론 그러한 미흡한 부분들에 적응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역시 그 나름대로 재미를 주는 게임이 된다. 시나리오가 끝났을 때 구경거리는 별로 없지만, 원래 워게임의, 특히 역사상 패자인 독일군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나타나는 세세한 전투서열과 중대급 단위에 이르는 세심한 조작은 워게임으로서의 독창성과 재미를 충분히 보장한다. 조작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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