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7.

백선엽의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를 읽고 있다



백선엽의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를 읽고 있다


  백선엽 장군(이하 '백선엽')은 근래 친일파 혐의로 인해 다시 화두가 되었던 인물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한국전쟁 기념방송 내용이 백선엽의 입장에 치중되었다는 문제 제기가 친일파 혐의와 묶여서 큰 논란이 되었는데, 방송을 보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사건에 관한 내용이 특정 인물의 증언에 입각하여 구성된 게 사실이라면 공정성 측면에서 당연히 문제가 될만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친일 문제가 다시 제기된 것은 좀더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백선엽의 이 책 역시 굳이 문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는 역사 서술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겠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군인으로서 경험한 이의 이야기이고 국가주의, 반공주의의 관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혹 이념이나 정치적 편향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그건 분명 읽는 이 자신의 편향이 반영된 것이다.

  악명높은 김창룡에 대해 업무적인 측면에서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에 대한 비판, 피아에 대한 객관적인 군사분석, 남북 및 이념갈등에 대한 비교적 유연하고도 인간적인 관점은 이념의식이 아닌, 넓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고도 진솔한 얘기로서 다가온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이야기를 이렇게 반감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이다. 비장한 느낌의 제목과 다르게, 이야기에는 따뜻하고도 때로는 여유있는 인간성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이야기는 박정희 사면과 빨치산 진압작전이다. 백선엽 본인도 나름 중요한 부분이라 여겼는지 박정희 사면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했지만, 그래도 대체 왜, 어떻게 사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래도 어떤 결정적인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빨치산 진압작전은 민간으로 침투한 좌익무장세력을 분리하고 제거하는 길고도 치열한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빨치산의 발호와 그 배경, 군경 간의 관계,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앞으로 읽을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만, 피로나 지루함을 느낄새 없이 말그대로 신나게 읽는 중이다. 오랜만에 취향과 재미, 동의가 일치점에 이르는 책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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