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9.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대군이 소련에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한 그 순간은, 역사적 상황으로서의 압도적인 장엄함 뿐만 아니라, 관찰하는 이의 입장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밖에 없는 기묘한 의문을 내뿜고 있다. 1940년 서부전역의 승리 이래 히틀러의 왕국은 유럽대륙의 패자였고 그 상승세는 두말할 나위없는 무적이었다. 만일 히틀러가 유럽 대륙의 통치와 지중해 및 아프리카 전선에 집중했다면, 그 전쟁은 훨씬 길고 - 특히 서부 연합국측에게 -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동쪽으로 향했고 공상의 생존공간은 나치 독일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쇄한 분쇄기가 되고 말았다. 대체 히틀러가 가만히 있는 소련을 왜 침공했는지, 얼핏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미 많은 목적과 동기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항목별로 정리된 이유보다는 그 당시 전쟁의 유일한 결정자였던 히틀러 개인의 심정을 파악하는 게 그 사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일일이 정리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계획하며 행동할 뿐만 아니라, 상황의 흐름과 더불어 묘하게 얽혀지는 심정이 충동하고 도발하면서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것은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사항의 축약보다는, 그들의 행동 양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때에야 그 자체로서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게 아닌가 한다. 특히 국가 및 국민의 행동과 운명을 오직 자신의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두 독재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마 이 책은 그러한 취지에서 쓰여지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군사적이거나 혹은 정치외교적으로 어떤 합리적인 이유들 그 이전에 놓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심정과 서로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군사물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입장에서 그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하고 있지만, 본서의 내용처럼 히틀러와 스탈린 간의 관계에 대해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풀어쓴 글은 처음 접했다. 히틀러, 스탈린 뿐만 아니라 루즈벨트, 처칠, 이런 인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어떠한 변천을 거치며 세계의 역사를 결정하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과정은 마치 역사 서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흥미진진한 통속소설을 연상시킨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독일군의 침공 개시 전후의 스탈린의 행동양상이다. 히틀러와의 협약을 철저히 믿었고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두려워했으며, 온갖 전쟁의 징후들을 무시하면서도 스스로 의문의 여지와 긴장을 품고 있었던 그 모습은, 단순히 독재자의 독선이라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이유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스스로 불안해하면서도 그 결심에 집착하는 경우는 주위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고 또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이러했던 인물이 결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전후 세계의 한 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보면, 사람의 영향력이란 게 꼭 그 인격의 수준에 비례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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