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7.

영화 『디어 평양』 (2006)을 보고



 영화 『디어 평양』 (2006)을 보고


  예전에 재일조선인들의 북송에 관한 책을 읽고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 차라리 일본에 남았더라면 훨씬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았을텐데,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 핍박과 착취의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 그 이야기들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답답했었던 것이다.

  같은 주제에서 이 영화는 좀더 울퉁불퉁한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의 삶과 그 속에서 북한을 지지하게 된 계기 그리고 그 열성의 연장에서 자식들을 북한으로 보낸... 그런 이야기이다. 스스로 믿고 의지했던 민족적 열정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이산가족 아닐까.

  혹시 그래도 이 영화의 주인공의 사례는 그나마 북한의 선전적 목적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양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평양에 가서도 그럭저럭 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았고, 그곳의 아들들도 대체로 괜찮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만큼 주인공이 북한의 아들들과 친인척들에게 생활지원을 제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북한으로 가서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특히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사람들의 사례는 어떠할까.

  결국 주인공은 아들들을 북한으로 보낸 과거와 현재에의 감회를 통해, 자신의 "선택의 오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수십 년을 이어온 다짐과 열성 속에서도, 결국은 자신이 경험한 관념과 현실의 괴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때에는 더 빨리, 더 잘 될 줄 알았다고 말이다(뭐 결국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라는 의미). 지금에 와서는 변명 같지만, 사실 그게 솔직한 심정이고 또 그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북한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이야기도,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한 진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래도 그 아내와 딸은 불쌍했다. 그것도 일종의 적응이고 온갖 고민과 고생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이란 게 있기 마련이지만, 남자의 고집 때문에 여자들의 삶이 그렇게 결정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가 없다. 이념과 인간관계가 일단 얽히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부터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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