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5.

역사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역사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역사의 평가". 이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마치 모든 방향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객관성을 강조하는 듯한 이 말이 무척이나 멋진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역사가 평가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의문을 갖는다면, 뭐라고 답해야할까?

  역사란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주체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역사가 무언가를 평가할 리도 없는 것이다. 역사를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사람 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추상성에게 평가의 책임을 찾는 것은, 결국 평가의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는 표현이다.

  제도적, 문화적으로 억압된 현실에서 도저히 당당하게 평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한다면, 그 나름대로의 의의와 힘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딱히 외적인 억압이 없는 상태에서도 "역사의 평가"를 찾는다면, 이건 평가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후자에 가까운 입장에서의 "역사의 평가"라는 표현이 마치 대단한 의의를 갖고 있는 양 떠받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평가의 책임을 물으면서, 불리한 영역에 관해서만 기존의 우세한 평가를 배제하며 "역사의 평가"를 찾는다.

  자꾸 "역사의 평가"라는 소리를 듣다보니까 대체 역사란 작자가 누구인지 찾아서 어떻게 평가할 거냐고 캐묻고 싶을 정도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역사가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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