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8.

고전게임 『팬저제너럴(Panzer General)』



고전게임 『팬저제너럴(Panzer General)』




  위대하면서도 정감어린 추억의 게임. 어리고도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군사물애호가의 여린 마음을 졸이게 했던 자극제. 그리고 지금은 너무 어려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팬저제너럴』.

  요즘은 인터넷이 있고 하니 군사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는 게 수월하지만, 그 시절에는 학생의 입장에서 군사물을 접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일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사실상 없다시피 했고, 또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고 원만한 편도 아니었기에 취미생활은 극히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다. 취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에 관해 정보를 구하는 주요한 방법은 공교롭게도 교양역사서적이나 백과사전에서 우연히 찾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별 것도 아닌, 독일군 전차나 급강하폭격기의 사진을 보며 그 정확한 명칭조차 모르면서 그저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팬저제너럴』은 한마디로 보물덩어리였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을 지휘해서 싸우는 게임이라니! 게다가 내가 아는 전차도 나온다!

  사실 정품을 구입한 게 아니라, 새로 구입한 컴퓨터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그 중에 『삼국지 영걸전』도 있었다!)에서 시작했다. 물론 아무렇게나 클릭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게임을 익혔고, 여러 용어나 명칭들을 제대로 이해할 리도 없었다. 예를 들어 전차 이름 중에 '타이거' 정도는 읽었지만 나머지는 대체 뭔지 알 길이 없었고, 그저 안 좋은 전차들 정도로 이해했다. 시나리오 목록 중에는 '베를린' 정도는 알아봤다. 자칭 군사물애호가였지만, 사실 아는 건 거의 없었다. 뭐가 뭔지 잘 몰라도 그것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운,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전략시뮬레이션 주식회사가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근래 워게임 정보들 중에 SSI 관련 새로운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을 염두하면, 이전에 없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SSI의 이름과 로고는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점차 영어실력이 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비로소 게임의 내용을 어느 정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캠페인이 여러 옵션으로 되어 있다는 것, 시나리오들이 역사상의 굵직한 전투들이라는 사실 등. 물론 한동안  「키예프」, 「벨로루시」, 「부다페스트」 시나리오 등은 그 내용과 존재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동부전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동부전선에 관해 아는 건 고작해봐야 모스크바나 스탈린그라드 정도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물론 역사상의 전세를 정말 명확하게 고증했는지를 따지자면, 그 답변은 지금으로서는 부정적이다. 애초에 게임의 구성부터가 고증과는 거리가 멀었고, 각 시나리오는 전투 초기의 대체적인 양상을 어느 정도 흉내낸 수준이었다. 그 외에 어느 정도 고증에 가까운 면을 찾자면, 지형의 대체적인 모습 - 강과 도시의 상대적인 위치 등 - 과 연합군의 압도적인 물량이었는데, 이게 바로 게임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물론 게임의 원리에 익숙해지고 나름 효과적으로 전투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그리고 캠페인에서 경험치를 높인 유닛들을 확보한다면 게임은 수월해진다.





  『팬저제너럴』의 묘미 중 하나는 전투 애니메이션이었다. 사실 죄다 똑같은 구도의 애니메이션이지만, 불꽃이 튀기고 화염과 연기가 넘치는 장면은 여간 박력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공격을 받은 전차는 포탑이 날아가고(!) 보병은 사람이 날아갔다. 적군이 파괴되는 광경을 직접 확인할 때의 쾌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반대가 되면 안타깝고 슬프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을 일일이 보다가는 게임 진행이 극히 느려진다. 그렇지 않아도 일일이 유닛을 선택해서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데, 애니메이션까지 나오면 더욱 답답한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애니메이션 옵션을 끄게 되고, 시나리오의 승패와 유닛의 경험치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다른 많은 게임들도 마찬가지지만, 『팬저제너럴』 역시 순수한 전술이나 작전 게임은 아니었고 시나리오 진행 중에 자유롭게 - 유닛 숫자 제한과 Prestige 수치의 제약에 걸리지만 않으면 - 유닛 생산과 배치가 가능했다. 게임에 필요한 유닛을 구입하여 병종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평지에서 적의 유닛을 격파하고 신속하게 전진하며 여타 유닛을 보호할 전차, 주로 도시를 공략할 때 필요한 보병, 넓은 시야로 적을 발견하는 정찰차량, 전투를 지원할 포병, 제공권 장악과 지상전투지원을 위한 각종 항공부대 그리고 이에 맞서는 대공화기. 역시 전투의 주력은 게임 제목대로(물론 그 시절의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전차이고, 전체 유닛수에서 전차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가급적 최신형의 우수한 전차를 구입하는 게 중요했는데, 판터 이상의 전차는 거의 모든 전투에서 우월한 위력을 발휘했다. 한편 시기별로 성능이 확실히 우수한 기종 이외의, 애매한 성능의 기종들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쟁 후반의 3호 전차나 Me-109 전투기가 그렇다.

  전차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건 티거 II였는데, 경험치에 상관없이 전투에서는 거의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캠페인에서 패배의 경로를 따라 전쟁 말기로 가면 오직 방어를 목적으로 티거 II를 다량 배치했다. 전차에게 불리한 지형이거나 혹은 공중공격의 경우 이외에는, 티거 II는 전투에서 패배는 커녕, 심지어 적의 공격을 받는 경우조차 드물 정도였다. 물론 이것은 게임에서 자금 역할을 하는 Prestige 수치가 캠페인 후반으로 갈수록 가득 쌓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바그라티온 작전 때 성능은 물론 경험치도 우세한 전차부대를 이용해 소련군을 섬멸하거나, 제트전투기로 서부연합군 공군을 제압하고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캠페인의 흐름은 패전인데 물량 결핍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고증과는 거리가 있다.




  고증과 거리가 멀다고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는 구현되어 있다. 공수주 능력, 사정거리, 탄약과 연료 보급, 지형 및 기상 효과, 참호화, 방어포격, 전략폭격 등. 이러한 요소들의 짜임은 게임을 좀더 그럴듯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주었으며, 한편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나름대로의 제병협동을 구현하게 했다.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도 나름의 기본적인 공략법이 있었다. 평지에서 적의 참호화된 전선이나 혹은 도시를 공략할 때는 가급적 전차로 하여금 전방을 우회하여 적의 포병을 제압하고, 포격이나 폭격으로 적의 참호화 수준을 격감시킨 뒤에 보병이 공략, 점령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리를 강이나 산 등의 지형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고, 도시를 공격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신속하게 전차를 도시에 근접시켜 그 도시에서 더 이상 적 유닛이 생산배치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연합군은 도시만 있다면 끊임없이 유닛을 생산해서 투입하는데, 그 유닛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밑도 끝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팬저제너럴』은 다른 워게임들보다는 오히려 예전의 일본 RPG 게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전술적인 측면도 분명 있지만, 이 게임을 하면서 집중하게 되는 건 무엇보다도 유닛을 업그레이드하고 경험치를 채우는 방식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육성된 유닛은 애지중지 아끼면서 가급적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시나리오와 캠페인 승패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육성된 유닛의 수준과 규모에 달려 있었고, 이러니 전체적으로는 워게임보다는 RPG와 비슷한 양상인 것이다. 따로 레벨 노가다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캠페인 중반이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가득 찬 경험치와 압도적인 성능의 유닛들이 연합군을 수월하게 유린하면서 게임의 긴장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도 RPG와 비슷한 느낌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꾸준히 유닛을 육성하며 시나리오들을 무난하게 통과한다면 캠페인 후반에도 역사상의 물량난은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에야 해보는 상상이지만, 만일 경험치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줄이고 생산 개념을 없애면서 보급은 보급로 확보 및 Prestige 제약 등의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수행되고 대신에 시나리오 상의 이벤트로 유닛이 추가 배치되는 식의 게임이었다면, 전술성이 더욱 중요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식의 게임이라면 아마도 캠페인의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할 것이고, 특히 캠페인 중반 이후로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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