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6.

『TOAW3』 - 「Road to Moscow 1941 I - Crossing the Border」



『TOAW3』 - 「Road to Moscow 1941 I - Crossing the Border」


시나리오 디자이너 : Robert Kunz 




  바르바로사 작전의 첫 번째 시나리오이다. 1941년 6월 22일. 턴 규모는 1일이고 헥스 규모는 10km, 부대의 단위는 연대/사단급이다.

  중앙군집단의 작전을 소재로 하며, 서쪽의 쾨니히스베르크와 바르샤바로부터 동쪽 끝은 서 드비나 강과 드네프르 강안의 비텝스크, 모길레프, 로가체프에 이르는 거대한 전장이다. 전체적으로 서쪽의 독일군이 북익과 남익으로 병진하여 국경지역의 소련군을 포위할 수 있는 구도이다.




  초기의 국경 돌파는 수월했는데, 소련군의 전력이 약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시나리오에서 소련군이 이렇다할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독일군 보병사단들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소련군을 밀어냈고, 전차사단과 차량화보병사단들은 국경지역의 전투를 회피하며 북익과 남익의 선봉으로서 적의 종심을 향해 전진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6월 23일에 브레스트 요새를 점령해버린 것이었다. 브레스트 점령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여 주보급로를 북쪽으로 우회하여 확보할 계획이었는데, 브레스트의 신속한 점령으로 인해 오히려 철도공병의 적절한 배치가 늦었다.




  리다를 점령하면서 국경지역의 소련군의 교통선을 차단하는 구도가 되었지만, 소련군을 그렇게 크게 섬멸한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경지역에 대한 보병사단의 대규모 투입이 과잉이었고 차라리 그 병력의 일부를 처음부터 차량화군단에 후속시키는 게 효율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슬로닌 방면에서는 대규모 소련군 기계화병력과 마주쳤다. 전투는 후속하는 보병사단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차량화군단들은 우회하여 전진을 계속했다.

  전반적으로 병력이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크게 3갈래로 갈라졌다. 중앙에서는 제3, 7, 12, 18, 20전차사단과 차량화사단 다수가 주로 민스크를 향해 전진했고, 북단에서는 제19전차사단이 레펠을 향해, 남단에서는 제4, 10, 17전차사단과 SS 다스라이히 사단이 로가체프를 향해 전진했다.




  민스크 일대에서도 대규모 소련군의 역습이 있었다.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스톨~민스크 도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문제가 있었다. 동쪽으로 멀리 전진한 병력들은 가급적 계속 민스크로 전진했고, 후속하는 차량화군단이 일단 소련군에게 역습을 가하여 도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가장 재미있던 것은 남단의 전진이었다. 프리피아트 습지의 바로 북쪽에는 소련군의 저항이 거의 없었고 기갑부대는 6월 24일에 핀스크를 점령하고 도로를 따라 무인지경을 달렸다.




  6월 28일에 소련군 서부전선군 사령부를 섬멸하고 민스크를 점령했다. 민스크 일대에서 소련군을 베르지나 강으로 몰아갔지만, 우세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접촉을 유지하는 데 신경쓰면서 성공적인 포위섬멸을 하지는 못했다.

  북단에서는 교통선이 단절될 위기를 겪으면서 전차사단이 전진 중이었고, 보병사단들이 전차사단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처음부터 북단에 좀더 차량화사단을 투입해서 전력을 강화하고 도로를 안전하게 확보했어야 했다.




  슬로닌의 남쪽 그리고 스톨~민스크 도로의 소련군에 대한 포위섬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스톨~민스크 도로 일대에서는 소련군의 기갑병력에 맞서 전차연대를 투입해야 했다. 한편 국경 일대에서도 소련군에 대한 소탕이 거의 종료 단계였다.

  중앙의 선봉은 눈에 보이는대로 빈 도로를 찾아 동쪽으로 전진하여 베리지노 등에서 베리지나 강을 도하했다.

  북단에는 추가적으로 차량화사단을 투입하여 추진력을 높였다. 남단에서는 차량화병력이 신속하게 북쪽으로 전환하여 보브루이스크와 로가체프 일대로 전진했다.




  7월 2일에 보브루이스크와 로가체프를 점령했다. 중앙의 선봉은 보리소프를 점령하고 모길레프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북단에서는 레펠을 점령한 상태였다. 스톨~민스크 도로 일대의 소련군은 포위섬멸로 완전히 소탕되었다.

  7월 3일로 시나리오 종료. 결과적으로 드네프르 강안에 도달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겨우 목표들을 점령해서 획득한 어려운 승리였다.

  원래의 방침은, 전차사단과 차량화사단들이 소련군의 저항, 특히 도시의 방어를 가급적 우회하여 적의 종심으로 전진하고 후속하는 보병사단들이 실질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동안은, 리다와 스톨의 점령까지는 그럴듯한 양상을 보였지만, 소련군이 주요지점들, 특히 교량지점을 점령한 채로 저항하여 전진을 방해했고, 보병사단의 후속은 늦었다.

  애초에 보병사단들을 국경지대의 소탕전에 너무 많이 투입하였던 것이 방침과의 모순이었다. 결국 소련군의 대규모 기계화병력이 역습을 가해왔을 때 전차사단과 차량화사단을 대규모 전투에 투입해야 했다. 보병이 좀더 초기에 신속하게 전진하여, 특히 북단과 중앙에서 많은 전투를 수행하는 게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시나리오의 막바지에서 목표의 점령이 절실하여 전차사단과 차량화사단을 시가전에 투입했다.

  병력이 크게 3갈래로 갈라지면서 그 병력 간의 협동이 거의 없었다. 시나리오의 짧은 시간을 염두하여 도로를 이용한 신속한 전진과 목표 점령을 재촉하면서 병력이 자연히 중앙의 민스크 일대로 집중되었다. 민스크에 도로가 집중되기는 하지만, 그 주변의 도로망이 대규모 포위 형성을 간단히 허용할 정도로 효율적이지는 않다.

  보급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전진거리가 너무 길다는 것도 있지만, 주요지점을 우회한 것도 보급의 악화를 초래했다. 게다가 전투의 진전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면서, 일부러 우회로를 확보할 예정이었던 철도공병 및 가교공병의 배치가 우왕좌왕했다.

  후방의 승리보다는 전방의 전진이 우선이다. 충분한 전력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면, 후방의 포위섬멸을 늦추어가면서 선봉의 신속한 전진에 추진력을 넣어야 한다. 최전방의 병력이 전진하면서 적군의 방어체계와 교통선을 파괴하면, 후방의 승리와 안정은 저절로 달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도로 배정과 행군서열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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